버스 노선 외우는 아이
아이가 처음 ‘노선’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엉뚱한데 진지한’ 순간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게임 이야기나 연예인 얘기를 할 때 우리 아이는 아주 다른 것에 빠져 있었어요.
“엄마, 701번은 울산대에서 터미널까지 가. 중간에 무거동 지나고, 시간 잘 맞추면 20분이면 돼.” 그 말에 깜짝 놀란 적이 있죠.
단순히 자주 타는 버스를 외우는 정도가 아니라, 노선 전체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습니다.
이 아이는 뭔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구나 싶었던 건.
학교를 다녀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스마트폰을 켜고 교통 앱을 켜는 아이, 버스 노선도와 지도 앱을 번갈아 보며 노선을 비교하고, 환승 경로를 시뮬레이션하듯 상상하곤 합니다.
“삼산에서 공업탑 가려면 126번도 되지만, 동천육교 앞에서 133으로 갈아타면 신호 대기 줄일 수 있어.”
이건 단순한 기억력이나 흥미가 아니었습니다.
관찰, 분석, 추론, 그리고 상상력이 모두 얽힌 몰입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계속되자, 저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의 깊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앞섰어요.
버스는 줄줄 외우는데, 학교 공부는 건성이고, 숙제는 미뤄두고… ‘이 머리로 공부 좀 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직접 손으로 그린 울산 시내 노선도를 보여줬습니다.
직접 분석한 노선의 단점과 개선 제안까지 적혀 있더군요.
“여기 정류장 간격 너무 짧아서, 도로 막힐 때 효율이 떨어져”, “승객이 많은 시간대에 배차를 조절하면 더 나을 것 같아” 같은 이야기들…
저는 그날 처음으로 ‘이건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문제였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공부 잘하는 아이’는 아닐지 몰라도, 저는 우리 아이만의 관찰력과 감각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어떻게 진로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버스에서 시작된 관심이 도시로, 지도 위로, 하늘길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차곡차곡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공부는 안해요. 근데 버스는 줄줄 외워요”
부모로서 당연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머리로 공부좀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넌 전교 1등이라며…”
‘버스를 좋아하는건 좋은데.. 공부는 언제하지?’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은 떠올랐습니다.
숙제는 건성이고, 시험준비는 딴청인데 버스 번호는 몇대를 줄줄 외우고, 정류장 이름을 순서대로 외우고, 급행과 완행의 배차 간격 차이까지 설명합니다.
심지어 차량 번호판의 앞 숫자로 차고지를 유추하더라고요.
한숨 섞인 놀라움. “아니, 이런 관찰력과 기억력이 있는데 왜 그게 국어, 수학에는 안들어가지?”
그런데 어느 날, 아이의 낡은 공책 한권을 우연이 보았습니다.
거기엔 손으로 그린 버스 노선도, 직접 계산한 이동시간, 환승 시간대별 추천 경로, 노선별 편차 분석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이건 취미가 아니라 탐구였습니다. 진짜 ‘자기만의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걸 기록해볼까?
세상은 늘 말합니다.
‘공부가 먼저다’, ‘좋아하는 것만 해서는 안된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바라보다가 점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이미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
노선을 외운다는 건 단순히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이해하고, 흐름을 파악하고, 이동과 연결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라는 것!
그래서 저는 이 특별한 관심을 조금은 특별한 방식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블로그라는 기록을 통해 이 아이의 ‘몰입의 힘’을 지켜주고, 조금씩 미래와 연결주고 싶습니다
버스를 넘어, 공간과 진로까지(아이 관심사 진로 연결)
버스에서 시작된 아이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지도로 확장 되었고, 지도는 지리로 이어졌으며, 요즘은 비행기 항로와 공항구조까지 흥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가 지금 외우고 있는건 그냥 노선이 아니라, 도시를 움직이는 흐름이야.”
“그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 그걸 교통공학자’, ‘도시계획가’, ‘항공운항기획자’라고 불러.”
아이 눈이 반짝이더군요.
공부가 그냥 책 속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세계를 지키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걸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의 시선으로 다시보기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예번에는 ‘공부 안하는 아이’였지만 지금은 ‘다르게 배우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모든 아이가 똑같은 방식으로 배우는건 아니니까요. 어떤 아이는 책으로, 어떤 아이는 선생님의 설명으로, 그리고 어떤 아이는 버스 노선도 위에서 세상을 배웁니다.
저는 아이의 그 ‘다른 방식’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차근차근 꺼내주고 싶어요.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님께..
혹시 여러분 아이도 공부는 시큰둥한데, 버스나 기차, 지도나 노선에 유독 관심이 많은신가요?
그건 ‘공부 안하는 아이’가 아니라 다른 언어로 세상을 공부하고 있는 아이일 수 있습니다. 아이 관심사 진로 연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책상에 앉아야만 배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진짜 배움은 아이의 눈이 반짝이는 그 순간, 그 대상, 그시간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버스노선을 따라 도시의 흐름을 읽고, 지도를 펼쳐 공간을 상상하고, 정류장을 넘어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아이의 눈빛, 그게 어쩌면, 이 아이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그 시선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로서 할수있는건 그 관찰이 진짜 진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리 하나하나 놓아주는 것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로 시작하여 그 다리를 함께 놓아가는 기록을 남기려고 합니다
버스 노선 외우는 아이의 관찰력과 몰입이 어떻게 세상을 설계하는 힘으로 자라나는지를 천천히 꾸준히 써려보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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